김세균(무한질주) [ E-mail ]

적설기 한라산 단체등반 후기(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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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積雪期漢拏山團體登攀後記 지난 12월 중순 쯤에 배종화 동문 한테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년초에 한라산을 등반하려는데 넌 어떻냐?"는 등반 제안이었다. 언젠가 부터 산을 좋아하는 동문들간에 년초의 적설기 한라산 등반이 정례화 되어 있던 터였고, 강북 촌놈이 되어버린 나를 잊지 않고 이번에도 불러준 것만도 고마워서 일단 오케이 하였다. 내정된 적정 인원(?)을 초과하여 신청자가 쇄도 할까 봐 선별하는 눈치여서 더욱 그랬다. 최종 확정된 엔트리 멤버는 다음과 같다. 배종화 부부, 채희선 부부, 김대영 부부, 김기흔 부부, 김세균 부부 이상 다섯 커플과 김대송, 양석모, 전천일, 한동훈 동문 포함 총 14명 ( 허동녕 부부가 현지에서 합류 하기로 예정했었으나 사정상 자리를 같이하지 못했고, 한라산 단골 멤버인 김영인, 홍인식 동문은 어인 일인지 불참했다) 1월11일(토) 오전 6시30분에 김포 공항에 집합했다. 주 5일 근무제가 확산된 영향인지 공항 대합실은 꼭두새벽부터 등산객과 골프 족들로 복작거렸다. 배 동문이 대표로 수속을 마치고 7시에 출발하는 제주 행 첫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막상 배정된 좌석은 뿔뿔이 흩어져 있어 이산가족이 되어 버렸고, 그 와중에 채희선 부부는 일찌감치 별도로 수속을 했는지 앞자리 창가에 나란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곧 뱅기가 움직였다. 처음엔 활주로에 이륙 대기중인 여객기가 몇 대 있어 출발이 쬐끔 지연된다 했다. 다음엔 안개가 짙어 조~금 더 지연될 거란 멘트가 나온다. 오래 기다려서 비행기 기름이 벌써 바닥났나? 이번엔 급유를 위해 다시 승강장으로 돌아 가는데 제주도 일정에 차질이 생긴 승객은 하기(下機)해도 좋다고 한다. 그러면서 늦어도 9시30분 전에는 제주에 도착이 가능할 거란다. “우~쒸, 그럼 우린 어케 되능거야?” 배 동문이 좌석 사이를 비집고 바쁘게 돌아다니며 변경된 일정을 전달했다. 예정했던 성판악-진달래 산장-백록담 왕복의 8~9 시간 코스는 이젠 불가능하므로 너댓 시간짜리 코스로 바꾸더라도 일단은 가 보자고 한다. "안 그러면 뱅기에서 내려 청계산엘 갈 순 없는 거 아녀?" 추위와 배고픔에 야간 산행까지를 각오했던 터라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했다. "제주도엔 등산만 하러 가냐?” 제사 보다 잿밥에 더 관심 있는 동문들도 분명 몇 넘은 있을 터였다. ‘잿밥’ 이라고라? 다금바리, 붓바리, 비바리( 제주 명물 삼바리)~ 소라, 멍게, 해삼~ 자리회, 깔치회, 멈국(?)… 룰~ 룰 랄~ 라~~. 아침을 걸르고 나왔더니 잿밥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9시 20분 경 제주에 도착해보니 하늘은 맑고 날씨는 포근했다. 배종화 동문의 동생 (배종희,경복 47회, 제주대 교수) 이 부인과 함께 나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적설기 한라산 등반에 자신 없어하는 여자 세분 (배종화, 김대영, 채희선 부인)은 배 교수 내외분이 무쏘 찝차편으로 케어 (care) 하기로 하고, 남자 아홉 + 여자 둘 (김매리, 유덕희 여사-매산회 정회원)은 세 대의 콜택시에 나누어 타고 '제2 횡단도로' 를 통해 어리목 (해발 1,100 미터)으로 향했다. 어리목 등산로 입구에는 우리 말고도 수 많은 등반객들이 먼저 와 있었다. 적설기 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산 중턱의 날씨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등산로 입구에 준비사항을 나열한 게시물을 훑어보고는 일행들의 표정이 새삼 긴장 되는 걸 알것 같다. 모두들 부지런히 꼼꼼하게 채비를 마치고, 역사적인(?) 등반을 앞두고 증명사진(‘We were there’ picture) 을 한 컷 찍고 11시 10분에 힘차게 첫 발을 내 딛었다 (표현이 쬐금 멋있나?) 어리목에서 출발, 윗세오름 (해발 1,743 미터) 을 거쳐 영실로 하산하는 코스로 산행거리는 오르막 4.8 키로, 내리막 3.7키로 합해서 8.5키로 쯤, 산행시간은 대략 4시간 반 쯤 으로 어림했다. 초반 완만한 오르막 길을 한참 오르니 계곡인 듯 싶은 곳이 나타났다. 울창한 숲 전체가 백설로 뒤덮여서, 기기묘묘한 형태와 모습을 연출하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눈은 족히 1미터 이상 쌓여있는 것 같고, 등산로는 한 사람이 겨우 다닐 만큼 만 다져져 있어 내려오는 사람과 마주치기라도 할라치면 길 비켜주기가 여간 번거롭지가 않았다. 은백색의 천지에 울긋 불긋한 복장의 등반객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 서서 오르는 모습도 볼 만 했다. 등산로는 제대로 잘 정비되어 있는 것 같았다. 웬만하면 나무 계단에 가드레일이 설치 되어 있는 것으로 짐작(?)되어 평상시에 길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눈 많은 겨울철엔 등산로가 발 아래 눈 속에 파묻혀있어 길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였겠지만, 관목지대에 들어서니 기다란 폴대에 매달린 빨간 깃발이 군데 군데 꽂혀 있었다. 깃발 따라 등산로가 있으려니 짐작하고 안전 산행을 유도하는 공원 관리소 측의 배려가 고맙게 느껴졌다. 안개와 눈보라, 보이는 것이라고는 뿌연 하늘과 눈 덮힌 구릉 뿐인 곳에서 대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왜소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구조물이 나타났다. ‘저기가 바로 대피소 인가보다…, 이제야 따끈한 국물 좀 마실 수 있겠구나’ 하고 다가가 보니, 어??? 커다란 헬리콥터가 착륙해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잠자리 날개가 안보여서 이상하다 했는데 알고 보니 추락해서 부서진 것을 몸통만 잘 모셔놓은 것이었다. 헬기 비행에 방해될 만한 장애물이라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짐작컨데 필시 제주도의 유명한 돌개바람에 휘말렸을 터였다. 드디어 윗세오름(1,743 미터) 대피소에 도착했다. 정상에 올랐다는 생각은 아무에게도 없는 것 같았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 첫 마디도 “너도 빨리 줄 서서 사발면 사 묵어, 맛이 쥑인다!” 였다. 대피소 안은 비좁고 밖에는 마땅히 바람을 피할 데도 없었다. 눈밭에 엉거주춤 쭈그리고 앉아 사발면 국물에 아침에 나눠준 김밥을 겯들여 점심을 때웠다. 김치 쪼가리를 안주로 소주도 두어 모금씩 홀짝거렸다. 그제야 기분이 “쨩” 이 되었다. 옛 조상님들 말씀에 “漢拏山도 食後景” 이라더니 하나도 틀린 말이 없는 걸 알겠다. 밥 먹느라 좀 쉬었더니 금새 온몸이 오들거리고 손끝은 시려웠다. 어챠피 오래 있을 장소가 못 되었다. 늦게 도착해서 사발면 물 끓기를 기다리는 한 두 넘은 배 동문이 몰아서 데불고 오기로 하고, 준비된 선수부터 영실을 향해 떠났다. 영실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좀 있는 편이었다. 벼랑 끝을 따라 이어진 길에서는, 경치는 아주 끝내 주던데, 가드레일이 발 밑 눈 속에 파묻혀 있어, 바람이라도 불어 몸이 흔들리고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주변에 붙들고 의지할 것이 없는 게 좀 불안하기도 했다. 한 시간 조금 더 내려왔을까? 수량도 꽤 풍부한 계곡이 옆에 흐르고 주변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들어섰다. 거기서 위로 올려다 보이는 바위들이 ‘오백나한’ 이라고 배 동문이 친철히 설명을 한다. 영실에 거의 다 온 모양이었다. 너무 일찍 내려왔나? 네 시가 좀 안 된 시간이었다. 짧은 산행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눈이 시리도록 눈 구경 많이했고, 발목이 시큰하도록 눈 길을 많이 걸어서 당분간 눈이 그리울 것 같지는 않았다. 콜 택시가 기다리는 곳 까지 한참을 걸어 내려가, 세 대에 나누어 타고 다시 제주로 향했다. 속 옷이 땀에 흠뻑 젖어서 더 그랬는지 택시 안에서도 내내 몸이 오슬 거렸고, 머리도 어질했다. 사우나를 하고 나니 그제서야 살 것 같았다. 한라산 등반기는 여기서 끝~~~
	2003-01-18 22:53:33 / 211.245.202.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