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조 [ E-mail ]
  Art Garfunkel 방한공연
  

Art Garfunkel이 한국에서 순회공연을 한다고 한다. Simon & Garfunkel의 명곡들을 들으며 청춘을 보낸 우리 세대에겐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다. 입장료가 뒤쪽 줄 S석은 10만원 이내인 것 같으니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을 가지다가도 나이가 74세라니 그 젊은 시절의 부드러운 소리가 나오지 않아 실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망설여진다.

Garfunkel만의 내한 공연이라 그런지 국내 언론의 기사에서는 Garfunkel을 위주로 조명해서 Simon & Garfunkel에서 Simon의 역할이 별로 설명되지 않는데 나는 사실은 Simon이 역사상 최고의 듀엣으로도 불리는 Simon & Garfunkel의 주인이라 생각한다. Simon이 그들이 히트한 대부분곡의 가사를 쓰고 또한 작곡도 했고 또 기타도 잘 친다. 세계 최고의 2인 화음을 구사한다는 평을 받았던 Simon & Garfunkel의 화음도 Simon이 넣었다.  물론 Billboard U.S. singles charts 1위에 오른 3곡  "The Sound of Silence", "Mrs. Robinson", 그리고 "Bridge Over Troubled Water"도 Simon이 작사 작곡했었고 이런 연유로 명예 음악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리고 Simon은 한번 수상후보 되기도 힘든 그래미상을 12번이나 받았다 한다.(Garfunkel은 6번의 그래미상)

Simon과 Garfunkel은 최근 국내 언론기사 내용대로 초등학교 때 만나 6학년 졸업식에서 연극에 같이 출연하면서 공연을 시작했고 12살땐 곡을 만들어 Garfunkel과 노래 불러 동네 히트곡이 되었었는데 그 제목이 “The girl for me”였다나…. 이 양반들 어린 아이 때부터 참 가당치도 않게 조숙했었나 보다!

아마 Simon은 이 때부터 Garfunkel의 타고난 부드러운 미성을 인정 하였던 것 같다. 당시의 유명듀엣 “The Everly Brothers” (이분들 또한 우리 세대가 기억하는 유명 듀엣이지!  “All I Have to Do Is Dream”, “Let It Be Me” 등등)를 우상으로 삼아 모방하여 Tom and Jerry라는 듀엣을 결성하고는 16살에 발매한 “Hey Schoolgirl”(요것들 또 Girl이야!)은 Pop Charts 49위까지 올라 갔다니 어릴 때부터 재능을 발휘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하는 법. 더구나 교육열이라면 세계 제일인 유태인 부모님들 아래에서였으니. 그래서 Simon은 뉴욕의 퀸즈 칼리지에서 영문학전공을 하고 한때 법과대학원에도 적을 두었었고 Garfunkel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어울리지 않게(?) 수학을 전공하고

그러나 Simon의 이 타고난 끼를 어떻게 하겠는가? Simon은 Simon & Garfunkel를 결성하는 1964년까지 틈틈이 30여곡의 노래를 작사 작곡해 혼자 혹은 Garfunkel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판을 내곤 해왔다. 아마 이때부터도 둘은 만나기만 하면 자꾸 다투어서 같이 판을 내지 못 했던 것 같다.

1964년 드디어 Simon과 Garfunkel은 Columbia Record사와 Simon & Garfunkel라는 듀엣 팀으로 계약을 맺는다. 자기들 성을 그대로 그룹 명으로 쓴 것은 팝 역사상 처음이라나!

64년 10월엔 Columbia Label로 “Wednesday Morning, 3 A.M.”라는 12곡이 담긴 LP판을 냈지만 별 볼일이 없었다. 실패를 예감한 Simon은 솔로로 뛰기 위해 영국으로 가서 이 술집 저 퍼브 등을 다니며 노래도 하고 판도 내면서 활동하게 된다. Garfunkel는 컬럼비아 대학의 수학교육학과 대학원으로 돌아 가서 Simon & Garfunkel은 사실상으로 해체된 거나 다름 없이 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 동부 쪽의 라디오 방송국들에서 LP판에 실렸던 “The Sound of Silence”의 신청이 제법 들어 온다는 소식이 “Wednesday Morning, 3 A.M.” 앨범 의 프로듀서 Tom Wilson의 귀에 들어 왔다. Wilson은 단조로운 Acoustic Guitar 반주의 folk 스타일 원래 곡에 전기 기타와 베이스 기타 그리고 드럼의 비트를 얹어 락 스타일로 리믹스해서 이 곡을 65년 9월에 싱글판으로 다시 내놓았다. 그런데 다시 내놓은 판이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만들게 된다. 오리지널 판이 나온 지 1년 가까이 지나 본인들도 포기한 상태에서 Simon & Garfunkel과의 상의도 없이 프로듀서의 아이디어로 새로 낸 싱글이 65년 12월에는 드디어 미국 Billboard차트 1위로 올라 간 일 이 벌어진 것이다. 영국에서 혹시나 하면서 수시로 팝 차트를 들여다 보던 Simon은 어느 날 자기들 곳이 차트 상위에 랭크 된 것을 발견했다. 놀랄 수 밖에!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영국으로 우송된 곡을 들어 보니 자기들이 녹음한 곡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인지라 경악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

Simon은 즉시 짐 챙겨 귀국한 후 67년 1월 다시 Garfunkel과 합류해서 히트한 싱글 곡과 같은 이름의 The sound of Silence라는 앨범을 내게 된다. 당연히 이 앨범도 상위 차트에 올랐고 같이 실린 Homeward Bound는 Top 10에, I am a Rock는 Billboard 3위에 까지 오르는 쾌거를 달성한다. 그러나 급히 인기에 편승해 만든 이 앨범은 평론가로부터 좋은 소리 듣지 못한다. 제대로 된 Folk Song이 아니라 급조된 흉내만 낸 Folk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실제로 The sound of Silence의 초기 녹음 곡에서는 둘이 노래 템포를 들쑥날쑥 하게 불러서 나중에 2차 수정 더빙할 땐 박자 맞추는 것이 어려워 강한 에코를 넣어 해결 했을 정도였다니까!

단 몇 달 만에 세계적인 인기 가수가 된 Simon & Garfunkel은 비평가들의 혹평을 만회 하기 위해 재정적인 여유가 생긴 김에 시간적인 여유를 최대로 만들어 제대로 된 예술성 있는 곡을 만들어 나간다. 이 후 이들은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1966)”와 “Bookends(1968)”,의 두 앨범을 히트 시키고 1970년에는 그들의 최대 히트 앨범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내놓으면서 팝 역사상 불후의 레전드가 된다. 그러나, 명성이 높아 감에 따라 둘 사이는 도저히 같이 갈 수 없게끔 나빠져 결국 최고의 정상의 자리에 서자 마자 Simon & Garfunkel은 해체하게 된다. 결국 5-6년간 앨범 딱 5장 내고 헤어진 것이다. 해체 이후에 콘서트를 위해 잠시 같이 노래한 적은 있어도 정식으로 재결합은 없이 각자 활동했었다.

 “Rolling Stones” 잡지의 역대 명곡 500선에서 48위에도 오른 불후의 명곡인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6주간 Billboard 1위를 차지했으며 세계각국에서 탑에 올랐고 특히 한국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100선 중에서는 “Yesterday”, “Let It Be” 다음으로 3위에 랭크 되기도 했다.

Simon은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처음 작곡할 때부터 이 곡은 Garfunkel이 혼자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Garfunkel은 Simon이 작사 작곡한 작품을 혼자 부를 수는 없다고 우겼으나 결국 혼자서 불렀다. 원래는 2절 까지만 있었는데 노래를 부르는 Garfunkel이 2절 만으론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해서 3절을 더 붙였다, “Sail on silver girl…. “로 나가는 3절이 실제로도 최고의 감동을 주는 부분이라고 여러 사람들이 생각한다. 곡 처음에는 피아노로 반주가 진행되다가 3절에 와서는 High와 Low 2대의 베이스 기타가 합류하고 콘서트 홀 효과를 주기 위해서 Echo chamber에서 드럼이 연주 되었으며 Horn 섹센이 곡을 마감하여 마치 오케스트라가 풀로 가담하는 듯하게 끝난다. 이 “Sail on sivergirl……”이 구설수에 또 올랐었다. Silvergirl이 속칭 헤로인 마약 주사 바늘을 뜻한다고…… 우리 딸도 대학시절에 한번 이런 얘기를 해서 “아빠 애창곡을 폄하한다”고 혼 내킨 적이 있는데 실제로 미국에서도 제법 논란이 있은 모양이다. 사실은 Simon이 당시 부인을 대상으로 3절 가사를 썼고 Silvergirl은 하얀머리가 나기 시작한 부인을 지칭한 것이라나……

“Bridge Over Troubled Water”이 Simon & Garfunkel의 대표 곡이 되어 연주회를 열면 언제나 이 곡이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데 정작 이 곳의 작사 작곡자인 Simon은 무대 뒷켠에서 바라만 보는 형국이 돼버렸다. 그래서, 나중에는 Simon이 “저건 내곡인데 공연히 Garfunkel에게 부르게 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

 

 

2015-01-29 19:20:21 / 147.46.1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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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우리 김박사 대단하시구먼. 논문을 쓰셔도 되겠어. 상세한 정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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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석 항공우주학자도 음악에 대한 대단한 식견을 가져볼 만 하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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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질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여기 '자유 게시판'의 수준이 갑자기 후~악! 높아 진 것 같네요. 앞으로도 자주 들러 문화의 향기를 널리 전파해 주기 바랍니다. 거듭 방가~ 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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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하 내친김에 old pops 포함 soft & easy listening music 도 계속 소개하고 평을 달아 보심은 어떠하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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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애창곡이지만 어려워 아직도 곡을 다 외우지 못함. 열심이 완성하여 연말에는 봉숙이 대신 선 보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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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완 44회 음악PD로 임명하믄 어떨가요? 정년퇴직후 봉사로..좋은자료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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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조 병하 말씀대로 밑천이 얼마 안되지만 평을 써볼까? 하여간 즐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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