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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국수 누르는 모양, 기산풍속도

 

그림 오른쪽 위에 ‘국수 누르는 모양’ 이라고 한글로 써 있고

그 아래 기산(箕山)이라고 낙관이 찍혀 있다.

 

부뚜막 위로 국수틀이 있다.

위 널빤지에 상투를 튼 남자가 올라타고 힘을 준다.

또 한 사내는 오른 손으로 국수틀 말뚝을 잡고

왼손에 꼬챙이를 쥐고 솥 속으로 국수를 젓고 있다.

 

국수틀에서 막 빠져 나온 국수가 솥으로 내려 앉는다.

부뚜막에 붙은 방 안쪽으로 가르마를 타서 빗은 머리를

뒤에다 붙인 여자가 담뱃대를 입에 물고 쳐다 보고 있다.

왼쪽 아래 구석에는 사각상에 술병과 대접, 보시기,

접시가 쌓여 있고 그 아래로 자배기가 놓였다.

 

남자 둘은 상투를 틀었을 뿐 아무 것도 쓰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하인 같고

담뱃대를 문 여인은 주막(酒幕)의 주모(酒母)일 것이다.

대나무 장죽을 문 모양으로 보아 퇴물기생쯤일지도 모른다.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주영하/사계절 중에서 발췌 요약)

 

 

국수재료

 

조선시대 국수재료는 주로 녹두, 메밀, 밀이었다.

이 밖에 마, 칡, 동부, 수수, 팥, 율무 등도 썼다.

 

요즈음은 밀이 흔하지만 옛날에는 참 귀했다.

기후 상 우리나라에서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상당량을 수입하여 진말(眞末)이라고도 불렀다.

따라서 밀국수는 혼인 잔치 때나 겨우 먹을 만큼 귀했다.

 

전통시대 가장 보편 적인 국수재료는 메밀이었다.

저 기산 풍속도에 나오는 국수도 메밀국수일 것이다.

 

 

국수 만드는 방법

 

국수 만드는 데는 대체로 3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밀대로 반죽을 밀어 칼로 써는 방법 이니

우리나라 칼국수가 대표적이다.

 

 

둘째는 납면법(拉麵法)이니

옛날 중국집에서 자장면 면발 뽑던 방법을 생각하면 된다.

곧 반죽한 밀가루를 잡아 늘여 국수실 한 가닥에서 두 가닥

두 가닥에서 네 가닥을 만들어 나가는 식으로 기하급수로 늘여나가는 방법이다.

 

 

셋째는 착면법(搾麵法)이니

반죽한 가루를 촘촘하게 뚫린 구멍에 밀어 넣어

빠져 나오는 뜨거운 국수실을 찬물로 받아 굳히는 방법이다.

 

위 기산풍속도는 이중 세 번째 착면법(搾麵法)을 쓰는 광경이다.

 

 

국수틀

 

메밀은 끈기가 없다.

13-15 퍼센트의 단백질을 함유하나 탄력이 없어 잘 끊어진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연결제로 밀가루, 녹말, 달걀을 쓴다.

 

먼저 녹두로 풀을 쑨 후 다음 메밀가루를 넣고 반죽을 한다.

녹말을 호화(糊化)시켜 점탄성을 늘리는 것이다.

(요즈음은 대부분 밀가루를 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반죽이 돌덩이처럼 단단해져

가는 구멍에 통과시키려면 힘이 무척 많이 든다.

따라서 위 기산풍속도에서는 사람이 올라 가게끔 사다리를 만들고

천장에 줄을 달아 그것을 잡고 널빤지에 등을 대고 힘을 주도록 했다.

 

 

사진: 국수틀

 

 

기산풍속도와 비슷한 시기인 구한말 일본인이

조선 시속을 그린 그림 중 국수 뽑는 광경이 있다.

 

사진 : 조선만화

 

다음은 그림에 딸린 설명이다.

 

….조선의 음식점에는 어느 곳을 보아도 국수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국수를 좋아하는 국민으로 보인다.

국수는 눈과 같이 하얗고 일본의 소면이나 말린 국수보다 훨씬 희다,

 

어느 음식점이라도 음식점마다 한 구석에 국수를 제조하는 장소가 있어서 밖에서 보인다.

온돌 집이기 때문에 국수 제조기계가 놓여 있는 곳은 낮에도 어둡다.

 

밑에는 큰 가마솥의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장작에 불을 지폈기 때문에 연기가 검게 올라 온다.

솥 위에는 커다랗고 두꺼운 조판 모양의 물체가 있고

이 물체에는 5-6치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에 국수 반죽을 넣는다.

위에서 절굿공이를 내리누르면 밑에 망이 있어서

이 망으로 국수가 실 모양으로 따라 내려와 가마솥에 떨어진다.

하얗게 거품이 생기면서 끓는다.

이것을 펴서 물에 넣는다.

드디어 백색의 상등 국수가 완성된다.

지레에 등을 대고 누워 다리를 천장에 대고 버틴다.

지레가 내려가서 발이 천장에 닿이 않게 되면

기둥에 고정시킨 횡목에 발을 대고 버틴다.

 

 

 

기상새설(欺霜賽雪)

 

위 조선만화 설명 중 “..국수는 눈과 같이 하얗고..” 부분에서

연암(燕巖) 선생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한 장면이 생각난다.

 

연암이 만주 성경(盛京-지금 심양(瀋陽)을 지나가다가 길가 점포에서

가끔 문설주에  기상새설(欺霜賽雪)이란 네 글자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기상새설(欺霜賽雪)의 문자를 풀면 희기가 서리를 능가하여,

백설을 걸고 내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암은 속으로 “장사치들이 자기들 심지(心地)가 깨끗하기가 가을 서릿발 같고,

게다가 또 희디흰 눈빛보다도 더 밝음을 스스로 나타내기 위함이 아닐까.”

조선 선비답게 고상한 쪽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전당포에 들렀는데 주인이 보니 조선에서

공부 많이 한 귀인인지라 좋은 액자를 써달라고 부탁을 드린다.

이 때 연암은 기상새설(欺霜賽雪)을 생각하고 써 주는데

주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열하일기(熱河日記) 성경잡지(盛京雜識) 중 1780년 7월 13일 기축

 

….. 보던 이들이 모두 필법이 아름답다고 칭찬이다.

주인은 “영감은 잠깐만 지체하셔요.

제가 다시 좋은 종이를 가져 오겠습니다.”

 

하고 일어나더니, 조금 뒤에 왼손에 종이를 들고

오른손엔 진한 먹 한 종지를 받쳐들고 오더니,

칼로 백로지(白鷺紙) 한 장을 끊어서 석 자 길이로 만들어

문 위에 붙일 만한 좋은 액자(額字)를 써 달라 한다.

 

중략 (中略)

 

구경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 그들은 일제히,

 

“글씨가 퍽이나 잘 되었습니다.”

하고 감탄한다. 다음 ‘새(賽)’ 자를 쓰니 더러는,“잘 되었다.”

하고, 칭찬하는 이도 있으나 다만 주인의 기색이 적이 달라지고

아까 ‘설(雪)’ 자 쓸 때처럼 절규(絶叫)하지 않는다.

 

나는 속으로, ‘정말 「새(賽)」 자야 늘 써본 적도 없어서 손에 익지 못하여

위 「색」 자는 너무 빽빽하게 썼고 아래 「패(貝)」 자는 지나치게 길어서,

그 마음에 들지 않을뿐더러 붓끝에서 짙은 먹물이 「새(賽)」 자의 왼편에

잘못 떨어져서 점차 번져 마치 얼룩진 표범처럼 되었으니,

이게 아마 그 자가 언짢게 생각하는 것이리라.’

 

하고, 짐짓 단숨에 잇달아서 ‘상(霜)’ㆍ‘기(欺)’의 두 자를 쓰고 붓을 던지고

한번 주욱 읽어본즉, 큼직한 ‘기상새설(欺霜賽雪)’ 네 글자가 틀림없다.

 

그런데 주인은,

“이는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 없어요.”

하며, 머리를 저을 뿐이다. 나는,

 

“그저 두고 보시오.”

하고, 몸을 일으켜 나오면서….

 

글씨 잘 써 주었음에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와는 상관없어요 소리까지 듣고 자못 머쓱해 진

연암은 주인이 무식해서 그렇겠거니 여기고 투덜거릴 따름이었다.

 

다음날 길을 가다 또 다른 점포에 들어가 다시 한번

기상새설(欺霜賽雪)을 써 주었건만 반응은 역시 뜨악하다.

 

 

1780년 7월 14일 경인

 

.......나는 갑자기 생각하기를,

“어제 전당포에서 ‘기상새설(欺霜賽雪)’이란 넉 자를 썼는데

주인이 왜 갑자기 좋아하지 않았는지 오늘은 단연코 그 설치를 해 보렸다.”

하고, 곧 주인더러,

 

“주인댁에서는 점포 머리에 달 만한 액자(額字)가 어떨까요?”

하니, 그들은 일제히,

 

“이것이야말로 더욱 좋겠습니다.” 한다.

내가 드디어 ‘기상새설(欺霜賽雪)’이란 넉 자를 써 놓은즉,

 

여럿이 서로 쳐다보는 품이 어제 전당포 주인 기색과 한가지로 수상스럽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것, 또 이상스런 일이구나.’ 하고, 나는 또,

 

“이건 아무런 상관없는 겁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들은,“그렇습니다.”한다.

 

곽생은, “저의 집에선 오로지 부인네들 수식을 매매하옵고 국숫집은 아니옵니다.” 한다.

나는 비로소 내 잘못을 깨달았다. 전에 한 일이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 그 뒤로는 점포 앞에 ‘기상새설(欺霜賽雪)’이란 넉 자를 볼 때마다

이것이 반드시 국숫집이로구나 하였다.

 

이는 그 심지의 밝고 깨끗함을 이름이 아니요,

실로 그 면발이 서릿발처럼 가늘고 눈보다 희다는 것을 자랑함이다.

여기서 면발[麵]이란 곧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진말(眞末)’이다…..

 

 

기상새설(欺霜賽雪) !

 

희기가 서리를 능가한다는 말은 중국에서 국수집 표시였던 것이다.

이 글 서두에서 이야기 한대로 위 열하일기에도 나오듯이

옛날 밀을 ‘진말(眞末)’ 이라고도 하였다.

 

 

참고서적 :

 

기산풍속도/ 하인리히 융커/이영석 옮김/민속원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주영하/사계절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 김상보/가람기획

열하일기 (인터넷-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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