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龍樵夫

유럽 각국의 역사 책을 구하다가

	요즈음 유럽 각국의 역사 책을 읽고 있다. 우리가 근대화라고 할 때는 곧 서구화(西歐化)를 뜻하는 것이니, 내가 평생 받은 교육과, 읽은 책이란 결국 대부분 유럽과 그 문화에 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날 문득 느낀 것은 서구 각국의 역사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서양사에 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고등학교 때 세계사 시간에 슬쩍 배운 것에 대학 때 크레인 브린튼 인가가 쓴 서양문화사 몇 권짜리 읽은 정도가 고작이다. (꽤 두툼하긴 했다) 그 외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책 몇 권에 소설 나부랑이 정도 읽었는데, 거기 나온 배경이 다 서양이니 그 지식 가지고 서양사에 대하여 알겠거니 하고 여겨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조각 지식일 뿐, 그래도 좀 일관되게 알자면 통사(通史)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국사, 프랑스사, 독일 등의 통사(通史) 책을 구하려 했는데, 놀랍게도 몇 권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영국사만 해도 박지향 씨가 쓴 영국사 외에는 번역본, 그것도 몇 권 밖에 없다. 박지향 씨, 요즈음 뉴라이트 쪽에 있는 것 같은데, 한국사를 한국사 학자에게만 맡길 수 없다 운운 까지야 뭐 그렇지만 (할 수 있는 소리지만),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은 반성해야 했다 하는 부분에서는 정나미가 떨어진다. 그러나 그의 영국사는 꽤 잘 쓴 책 같다. 우리나라에서 영어 가지고 밥 먹겠다는 사람, 영어 교사-학교 선생, 학원 강사 할 것 없이 수십 만은 될 터인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사람들은 영국사를 읽어야 하지 않나? 이 분들은 그냥 원서(原書)-영어로 영국사를 읽었을까? 그랬다면 다행이지만, 어쩐지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프랑스어, 독일어로 밥 먹는 사람 숫자도 영어 보다야 훨씬 적겠지만 그래도 꽤 될 터인데 프랑스사, 독일사 책은 앙드레 모로아 책 번역본이나 캠브리지 역사책 번역 정도 밖에 없다. 미국사도 그 옛날 이보형 씨가 쓴 책이 아직 팔리고 있다. 뭐 미국사가 달라진 것 있어? 하고 나온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의외로 강준만 씨가 미국사를 그것도 여러 권으로 쓴 것이 나와 있다. (이 분 책을 몇 권 읽은 적 있는데, 뻔한 이야기 가지고 질질 늘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강 씨가 과연 미국사를 쓸 내공이 있을까? 강준만도 미국사를 쓰는데, 김동길 씨는 뭐하고 있는지? 웬 독일어 강사 인지 교수인지 하는 노인네가 쓴 독일에 관한 책도 있는데, 독일어는 잘 하는지 몰라도 역사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 독일에 대한 자기 느낌, 그것도 케케묵은 인종주의적 느낌을 정리한 걸 책이라고 내 놓은 것도 있다. 활자로 찍고 장정하면 책이지, 책이 뭐 별거 있나?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종이책이라면 낼 때 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어, 불어 독일어 능력을 자랑해도 서점에 그 나라 역사책은 몇 권 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인문학의 현 수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를 한국사학자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말은 서양사 전공자들 사이에서 주로 나오는 것 같은데 자기네 주 전공에 대하여 저서부터 내고 그런 소리 하는 것이 순서 아닌지 모르겠다.
	2011-07-26 14:14:46 / 211.54.9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