樵夫

(우리말) 열무꽃을 보았다면 처녀 불알도 보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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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운 1966년 ‘조선일보’ 등단, 저서 ‘원님 전상서’(시집) ‘알 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 1234가지’ ‘우리말 지르잡기’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 아래는 최근 창간한 계간지(季刊誌) 시인추첩(詩人手帖)에 실린 권오운 씨 글 ‘우리말 더듬거리는 우리 시들’ 중 일부다. 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 전략(前略) …오래 고민 끝에 이제 우리 시를 한번 되작거려 보기로 했다. 꼭 저질러 보고 싶었던 작업이기도 하다. 이미 읽고 정리해 두었던 것 말고 수백 권의 시집을 더 읽어 냈다. 한마디로 우리 시 역시 초미에 가오리탕이었다. 1. 열무를 심어 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 앉는 것이었다. -문태준, “극빈” 부분 2. 기차소리 젖은 강물 위로 어미니 그림자 내 그림자 하얀 열무꽃처럼 떠올라 둥둥 떠올라 꽃가루 흐르는 오월의 강물 위로 -신현림 ‘하얀 열무꽃처럼’ 부분 위의 두 예문에 나오는 ‘열무꽃’을 보고 간이 떨어질 뻔했다. 열무꽃이 피다니! 너무나 뜻밖이었다. 결론부터 말해서 열무는 꽃이 피지 않는다. 아니 필 수가 없다. 만약 하나 열무가 꽃이 피었다면 그것은 손가락에 장을 지질 일이다. 이런 사태는 ‘열무’를 무의 한 종류로 알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열무는 단순히 ‘어린 무’일 뿐이다. 어린 무가 어찌 꽃이 피겠는가? 만약 꽃이 피었다면 그것은 이미 ‘어린 무’가 아닐 것이다. 1의 경우, 실제의 꽃이 아니라 시적 형상화일 뿐이라고 우길지 모르나 그도 석연치 않다. ‘무씨를 심어 놓고’나 ‘무 모종을 심어놓고’가 아니라 ‘열무를 심어놓고’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열무’라는 종류의 무를 심었다는 의미인 까닭이다. 실은 열무를 심었다는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요즘 들어 가을철에 김장용으로 더러 무 모종을 팔고 있으나 거개는 무씨를 심어 가꾼다. 설사 싹을 틔운 무를 심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무모종일 뿐 열무라고 할 수 없다. 후략(後略) 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 내 시(詩)는 별 취미가 없어 잘 모르지만, 소설을 읽어 보면, 한국의 소위 대표적 작가가 썼다는 것이 기도 안 찰 때가 자주 있다. 이게 무슨 영어 소설인지? 일본 소설인지? 한국 작가가 쓴 거 정말 맞는지? 서양어 번역투! 단어만 바꾸면 바로 유럽어가 되는 데 별 무리 없는 문장에, 아니면 일본식 표현 아무 생각 없이 쓴 것들 투성이다. 영어건 일본어건 쓸 때는 써야겠지만 중심은 어디까지나 우리 말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권오운 씨 글을 읽으니, 시(詩) 또한 상태가 썩 좋지 않은 모양이다. 시(詩)야말로 언어사용의 정수 아닌가? 권씨가 쓸데없이 까칠한 것이 아니다. 우리말을 갈고 닦으려면 이런 지적을 계속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씨(氏)의 건필(健筆)을 기대해 본다.
	2011-06-02 10:14:54 / 211.54.90.131